벌써 기억이 흐릿해지기 시작해서 황급하게 적는 장례식 참여 후기.
장례식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외할아버지 장례식이었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외할아버지의 얼굴도 이름도 모를 정도로 교류 없이 지내서인지 그냥 돌아가셨구나 싶었습니다.
조문객으로도 안 가봤는데 갑자기 손주로 참여하게 되어 당황스러웠습니다.
다만 어머니가 슬퍼할까 봐 걱정이 됐는데 충격을 받으셨는지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요양원에서 눈만 뜨고 간병인 손에 지낸 지 벌써 몇 달이 됐는데도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외할머니 집에서 하룻밤 자고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장례지도사가 행사의 주인공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요즘은 사진이 아니라 모니터 액정에 사진을 띄워놓던데 테이블 끄트머리에 마우스가 나와있어서 뭔가 웃겼습니다.
주인공이 바뀔 때면 사진 파일만 바꾸는 것 같습니다.
장례지도사가 여러 옵션이 담긴 카탈로그를 가져와서 삼촌에게 보여주면서 설명했는데 홈쇼핑 쇼호스트가 생각났습니다.
주인공은 외할아버지라더니 말만 번지르르했고, 장례식장 직원과 상조회사 직원의 은근한 견제도 볼거리였습니다.
가면 옷을 빌려준다고 해서 장례식장에서 빌려주는 상복을 입었습니다.
생각보다 옷이 불편해서 그냥 집에 있는 정장을 입을 걸 하고 후회됐습니다.
음식은 기름지고 메뉴 변화가 없어서 물렸지만 자체는 맛있었습니다.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는데 손주는 조의금 관리, 손님 안내, 신발 정리를 맡았고, 삼촌과 이모는 절과 손님 상대를 맡았습니다.
삼촌이랑 이모부 쪽에서 조문을 많이 와서 사람이 많았음에도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주로 향을 지키셨고, 저는 아버지를 도와 향에 불을 피웠습니다.
초가 꺼지면 영혼을 쫓아내는 거라고 해서 열심히 지켰는데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이 뻑뻑하고 코 끝에 향 냄새가 아른거립니다.
이번에 알게 된 전통도 몇 가지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는 공수를 반대로 해야하고, 이틀인가 삼일째에 남자는 완장, 여자는 하얀 리본을 착용합니다.
상주는 완장이 세 줄이고, 나머지는 두 줄입니다.
그리고 국화가 많이 쌓이면 옆에 있는 물이 담긴 달항아리에 꽂아두는데 알뜰한 팁이었습니다.
입관식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서양 관과 다르게 관이 좁아서 시체를 넣을 때 밧줄로 꽁꽁 묶어서 넣는다고 해서 볼 생각에 설렜는데 삼촌이 안 된다고 말리셨습니다.
말로는 트라우마 어쩌고 하셨는데 이모들이 엉엉 우는 모습을 저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과학 시간에 제일 좋아하던 실험이 해부였거든요.
아쉽지만 포기했는데 입관식이 끝나고 복도에서 이모들 우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장례식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그때서야 돌아가신 게 실감이 나서 그랬다고 나중에 뻘쭘한 얼굴로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참, 절하는 곳 안쪽에 문이 있는데 거기 장례 치르는 사람들이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TV, 냉장고, 옷장, 화장대에 내부 화장실에는 샤워실까지 있었습니다.
이불만 챙겨가면 됐는데 다른 물건으로는 슬리퍼가 유용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안마의자가 있다면 이용하는 걸 추천합니다.
몸의 피로가 풀려서 좋습니다!
업체에서 버스를 불러줘서 편하게 화장장으로 이동해서 수목장을 했습니다.
관을 옮길 때 장손이 영정 사진을 들고 움직이게 시킵니다.
그런데 화장장에 가보니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들고 이동하더라고요.
수목장 하는 곳은 탁 트인 곳이라서 향 냄새랑 불편한 잠자리에서 벗어나니 엄청 좋았습니다.
직계면 조문이 아니라 장례식 진행 요원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 장례 지내면서 동생이랑 살아있을 때 잘하고 부모님 장례는 간단하게 지내자고 오백번 말했습니다.
원래도 장례식은 산 사람들을 위한 행사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고 나니까 더 굳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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