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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경험

[간병일기] 3. 못 움직이는 환자 간병하기 (수술 2일차)

by 노트 주인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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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일기
1.
어머니의 수술
(수술 전~당일)
2. 
병원 입성기
(수술 1일차)
3.
환자 간병 1일
(수술 2일차)
4.
컨디션 저조
(수술 3일차)
5.
보호자 교대
(수술 4일차)
6.
코로나 환자 간병
(수술 13일차)
7.
동생의 입원
(간병 21일차)
8.
최악의 날
(수술 24일차)
 

 

 

어머니가 경추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이 겪은 일을 정리했습니다.

 

 

 

환자 간병 1일차 (수술 2일차)

 

본격적으로 간병한 첫날인데 진짜 힘들었습니다.

아버지께 인수인계 받은 게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고, 예상과 달리 못 움직이는 환자를 간병하느라 몸에 제대로 축났습니다.

어머니는 꼼짝도 못 하고 말만 겨우 했습니다.

경부보호대를 해서 고개도 못 움직이고, 손에 힘도 제대로 못 줘서 혼자서는 핸드폰도 못했습니다.

 

 

AM 5:00~7:00 간호사 회진 시작 (환자 상태 체크)
AM 7:30~8:00 아침식사
AM 8:00~9:00 의사, 교수 회진
AM 9:00~9:20 네뷸라이저
AM 9:30~10:00 재활 (열전기 치료)
AM 10:00~11:00 환자 상태 체크
PM 12:30~1:00 점심식사
PM 2:00~2:20 네뷸라이저
PM 4:00~5:30 환자 상태 체크
PM 5:30~6:00 저녁식사
PM 8:00~8:20 네뷸라이저
PM 8:30~ 병실 소등

 

숨 돌릴 틈 없는 보호자의 일과표입니다.

쉬는 시간에 환자의 앙탈(...)을 받아주고, 짐 정리하고, 잡일을 이것저것 하다 보니 사실 쉴 시간이 없었습니다.

 

 

1시간만에 쓸모를 잃은 소변통.

 

병원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됩니다.

환자 상태를 체크하러 간호사가 커튼을 열고 찾아옵니다.

어머니는 소변줄을 연결한 상태였고, 간호사가 비워달라고 했는데 소변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치를 물어보려고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아서 동생한테 걸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깨우려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소변통은 어제도 없었고 아버지가 팩 째로 분리해서 비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변통이 필요했는데 운 좋게 간호사실에 하나 있다고 해서 편하게 구입했습니다.

소변을 통에 따르고 오물처리실에 가서 비웠는데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소변줄을 제거했습니다.

간호사가 민망해했는데 어머니가 편해지셔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저귀 갈기 업무가 추가됐으니 저한테는 안 된 일이었죠.

 

환자의 앙탈 겸 어리광을 받아주느라 꽤 바빴습니다.

물 마시고 싶다고 하면 텀블러를 가지고 배선실에 가서 정수기에 받은 다음 빨대를 꽂아서 입에 물려야 했습니다.

목 아프다고 하면 침대를 올려서 가글 따른 다음에 빨대를 꽂아서 입에 가까이 대어준 다음 종이컵을 대줘서 가글 물을 받아 버려줘야 했습니다.

 

간단한 요구사항임에도 환자가 꼼짝도 못 하니까 시중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몸이 안 좋은 할머니가 안 와서 다행인데 저한테는 다행히 아니었죠.

 

회진 스타트를 끊고 나면 간호사 여럿이 시간차 공격으로 찾아옵니다.

보호자한테 환자가 마신 물의 양, 배출한 소변의 양, 먹은 음식 양을 물어봅니다.

소변줄을 차고 있을 때는 용량을 물어보고, 기저귀를 찰 때는 오물처리실에 저울이 있는데 무게를 재고 알려달라고 합니다.

 

보호자의 업무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주사를 놓을 때 간호사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바지를 잡아줘야 합니다.

환자가 먹을 약도 주는데 환자가 신경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보호자가 체크하고 먹여야 했습니다.

이런 잡다한 보조를 해야 해서 잠을 못 잤습니다.

 

 

7시 30분부터 8시까지 아침 식사입니다.

청포묵 같이 생긴 게 나왔는데 그게 미음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먹여본 건 살면서 처음인데 할 일이 많았습니다.

 

1. 아주머니가 식판을 들고 오면 커튼을 열고 식판 받기

2. 침대에 붙어있는 책상을 올리고 그 위에 식판 올리기

3. 리모컨을 눌러 환자를 앉히고 반찬 뚜껑 전부 열기

4. 한 술 한 술 떠서 살짝 식혀주면서 먹이기

5. 물 마시고 싶다고 하면 물에 빨대를 꽂아서 입에 물려주기

6. 식사 끝나면 반찬 뚜껑 전부 닫고 식판 반납하기

7. 환자 가글 시켜주기 (뚜껑에 적당량 따라서 시켜주고 종이컵으로 받아주고 버리기)

8. 리모컨을 눌러서 환자 다시 눕혀주기

 

식사 시간이 30분인데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제 끼니는 그냥 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호자 몸도 잘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요?

그거야 좀 익숙해졌을 때 얘기지 못 움직이는 환자를 상대하는 초보 보호자한테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습니다.

 

 

8시부터 9시까지는 회진시간입니다.

의사와 교수가 시간차를 두고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뒤통수에 연결했던 배액관을 제거하고 구멍에 스테인플러를 두 번 박았습니다.

이런 거 좋아하는 편이라서 1열에서 흥미진진하게 관찰했습니다.

(* 배액관을 제거해서 아스피린 복용이 다시 가능해졌습니다)

 

의사가 있을 때 일어서는 연습을 하려고 했는데 환자가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해서 무산됐습니다.

생리현상은 어쩔 수 없죠.

다시 온다고 했는데 의사가 안 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수가 왔습니다.

이제 환자가 혼자 일어서거나 목에 힘을 줘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벌떡 일어나지 말고 옆으로 누운 다음 침대를 45도 기울인 상태에서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누워 있는 게 안 좋다고 움직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상태가 안 좋았는지 어머니는 아직 무섭다며 앉는 연습만 한 번 했습니다.

 

오전 회진은 시간이 불규칙했습니다.

아침 먹기 전에 의사랑 교수가 오기도 해서 그냥 환자 옆에 있어야 했습니다.

 

 

 

9시부터 9시 20분까지 네뷸라이저를 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호흡기 치료인데 간호사가 관이랑 약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면 병실 안쪽에 있는 기계를 가져다가 연결해서 조립하고 전원을 켜야 합니다.

커다란 기계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썩은 계란 냄새가 납니다.

 

환자가 관을 물고 연기를 들이마시게 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힘들다고 가만히 누워있어서 관을 빼서 입가에 가까이 대줘야 했습니다.

높이를 맞춰 20분간 들고 있으려면 내내 허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이걸 하루 세 번 해야 하는데 나중에는 등이 아팠습니다.

 

웃긴 건 어제 아버지가 간병할 때는 어머니가 관을 물고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절로 욕이 나왔습니다...

 

 

9시 30분부터 10시까지는 재활치료 시간이었습니다.

지하 1층에 있는 재활의학과에 열전기 치료를 하러 가야하는데 어머니가 못 움직이니까 간호사가 이송 요원을 불러줬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같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저도 1층으로 항했습니다.

어젯밤부터 간병을 시작하고 처음 생긴 자유시간이었습니다.

내내 병실에 갇혀있다가 처음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늘로 따지면 5시에 시작했으니까 4시간 반 만에 처음으로 허리를 핀 셈이죠.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을 빵을 뚜레쥬르에서 사고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재활하러 내려갈 때 보호자가 필요했다고 말해서 숨이 턱 막혔습니다.

이 사건으로 나가서 숨 돌리는 건 포기했습니다.

 

 

10시부터 11시까지는 환자 몸상태 체크 시간입니다.

혈압, 체온, 혈당 등을 체크해서 환자가 병실에 있어야 합니다.

원래 환자만 있으면 되는데 어머니는 못 움직여서 보호자도 있어야 했습니다.

환자의 앙탈을 받아주고 짐 정리를 하니까 점심시간이 됐습니다.

 

 

12시 반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입니다.

하얀 죽이 나왔고, 아침에 했던 것처럼 밥을 먹이고 가글도 시켰습니다.

잡일이 많아서 번거로운데 은근히 힘쓰는 일도 많아서 몸이 뻐근했습니다.

 

 

사물함에 붙어있던 안내문. 증상이 똑같았다.

 

특이 사항으로는 어머니한테 정맥염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링거를 4개에서 2개로 줄였는데도 원래 혈관이 안 좋아서인지 바늘 꽂은 부위에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그래서 왼쪽에 놨던 링거를 오른쪽으로 옮겼지만 자꾸 붓고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손가락이 계속 부어서 바늘 꽂은 위치를 옮겼습니다.

 

 

2시부터 2시 20분까지 네뷸라이저를 해드렸습니다.

사용한 기계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관은 폐기물 통에 버렸습니다.

조금 쉬는 시간이 생겨서 머리에 묻은 소독약 자국을 닦았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어머니가 저보다 10kg 이상 무거운데 힘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서 허리만 간신히, 잠깐 드셨습니다.

민망하고 뭐고를 떠나서 그냥 무거워서 힘들었습니다.

물티슈로 한 번 닦고 새 기저귀로 가니까 시원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물처리실에 가서 비닐봉지에 넣은 다음 저울로 무게를 재고 거기서 버렸습니다.

간호사한테 무게를 알려주면 기저귀 임무는 끝입니다.

어머니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여섯 번 넘게 갈아드렸는데 진짜 힘들었습니다.

 

소변이 시원치 않아서 다시 소변줄을 연결할 뻔했습니다.

대변은 못 봤고, 의료진 도움이 없으면 혼자 소변을 못 보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싫다고 하셔서 지켜보기로 했지만 양이 적은지 간호사가 작은 초음파 기계로 몇 번 확인했습니다.

 

 

4시부터 5시 반까지 환자 몸상태 체크 시간입니다.

혈압, 체온, 혈당 등을 체크하는데 저도 있어야 했습니다.

 

 

5시 반부터 6시까지 저녁 식사입니다.

드디어 밥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당뇨식으로 교체되어서 간이 밍밍하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김과 함께 밥을 먹이고 가글을 시켜줬습니다.

 

 

8시에 네뷸라이저를 하니 일단 일과가 끝났습니다.

할수록 요령이 생겨야 하는데 피로 회복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빨라서 지쳤습니다.

 

8시 반이면 병실에 불을 껐는데 독서등은 켤 수 있었습니다.

몸 쓰는 타입이 아니라 피곤했는데 옆에 있는 할머니가 코를 무척 고셨습니다.

게다가 다른 병실에 있는 아기 환자가 밤새 울어서 잠을 설쳤습니다.

 

 

p.s.

어머니가 걱정됐는지 할머니를 포함한 친척들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정 말고도 잡일이 많아서 일일이 상대하려니 피로가 중첩됐습니다.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안심시켜 주느라 배로 피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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