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
일제의 정책 | 국내 독립 운동 | 만주 무장 투쟁 |
중국 관내 운동 | 국학 연구 | 일제강점기의 사회와 문화 |
1.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체제
1. 수립
1) 배경
-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공감대 형성
2) 과정
(1) 연해주
- 대한국민의회 (대통령 손병희)
- 전로 한족회 중앙총회 상설 위원회
(2) 상하이
- 임시정부 수립 (국무총리 이승만)
(3) 서울
- 13도 대표의 국민대회
→ 한성임시정부 수립(집정관 총재 이승만)
3) 결론
- 한성정부의 법통, 인맥 계승, 대한국민의회 해체
→ 상하이에 통합정부 수립
한성정부
- 13도 대포
- 국민 대회
- 2개에는 '국민 대회' 다른 1개에는 '공화 만세'
- 경성에서 <임시정부 선포문>, <국민 대회 취지서>라는 불온 인쇄물 발견
2. 정부 체제
: 최초의 3권 분립에 입각한 민주 공화제 정부
1) 구성
- 국무총리: 이동휘 (무장 투쟁론, 한인 사회당)
2) 비밀조직
(1) 교통국
- 통신 기관
- 군 단위로 교통국, 면 단위로 교통소
(2) 연통제
- 내무부 산하 비밀 조직
* 1910년대 중국 관내 독립운동 기지
1) 동제사
- 상하이에서 조직
- 박달학원
2. 대동보국단
- 신규식, 박은식
3) 신한혁명당
- 일시적 복벽주의 주장
cf) 대동 단결 선언
- 융희 황제가 삼보(토지, 인민, 정치)를 포기한 8월 29일은 바로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월 29일
-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한 때
-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곧 우리 국민 동지에 대한 묵시적 선위니 우리 동지는 당연히 삼보를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 대통을 상소할 의무가 있음
- 신규식, 신채호, 박은식, 조소앙 등 상하이에서 발표
- 국민 주권론 → 임시정부 수립의 필요성 제기
4) 신한청년당
- 동제사의 소장파 인사
-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 파견
* 임시정부 통합에 대한 논쟁
안창호
- 안창호를 포함하여 이동휘, 이승만을 택하여
- 각 조직을 통합하려는 이 계획은 2개월이면 성공
문창범 (무장 투쟁론)
- 상하이와 같이 원격지
- 타국의 영토 안에 있으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음
통합
- 상하이와 러시아령에서 설립한 정부들을 해소
- 국내에서 13도 대표가 창설한 한성정부를 계승
- 국내의 13도 대표가 민족 전체의 대표임을 인정
- 정부의 위치는 상하이에 둘 것
- 한성정부의 집정관 총재 제도와 그 인선을 채택
정부 수립
- 금번 시위 운동할 때에 반포된 것
- 지금 이승만씨가 대통령으로 선고
- 국무총리 이동휘씨 이하 국민이 숭앙하던 지도자로 통일 내각이 성립
2.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활동
1. 활동
1) 자금조달
- 애국(독립) 공채 발행
- 대한민국 원년 독립공채로 함
- 국내 → 연통제, 교통국 → 이륭양행(만주), 백산상회(부산) → 임시정부
2) 군사
무장 투쟁에 대한 입장
- 전쟁이란 것은 충분히 준비된 후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됨
(1) 만주 무장 투쟁 지원
- 남만주
(2) 만주 간접 독립 전쟁
- 서간도(서로군정서) + 북간도(북로군정서)
(3) 한계
- 중국 관내에서의 직접적인 군사활동에 제약
3) 문화
- 독립신문 간행
- 문명인의 생활에 언론기관이 필요하지만 민족이 광복의 대사업을 이루려는 시점에서 더욱 필요
- 사료 편찬소 (박은식)
ex) <한일 관계 사료집>, <한국 독립운동지혈사>
4) 외교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적극적 활동으로 미국의 대한 감정은 유리하게 전개됨
(1) 유럽 (김규식)
- 파리 강화 회의, 파리 위원부
(2) 미국 (이승만)
- 구미 위원부
2. 한계
1) 경제적 위기
- 대통령 이승만이 물러남
- 정부는 자리를 잡았으나 경제적 곤란으로 정부를 유지할 길도 망연함
- 둘째로는 국내 각 도, 각 군, 각 면에 조직하였던 연통제가 발각되어 많은 동지가 왜에 잡혔음
- 연통제와 교통국 파괴 → 심각한 자금난
2) 갈등 심화
- 사상 대립
- 노선 대립
3) 외교 활동의 한계
- 열강의 무관심
- 이승만의 위임 통치 청원서 제출
- 당분간은 한국을 국제 연맹 통치 밑에 둘 것을 바람
* 의열단
- 7가살: 암살 대상
1) 조직
- 신흥 무관 학교 출신
- 만주
2) 목표
- 조선혁명선언: 신채호 저술
1. 자치 운동 비판
- 너희들이 '동양 평화', '한국 독립 조선'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운동을 완화시키려고
- 매국노를 시키어 미친 주장을 부름
-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신 민족은 굶주린 귀신이 될 뿐
2. 문화 운동 비판
- 경제 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늘, 문화 발전의 가망이 있으랴?
-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 잡지를 가지고 문화 운동으로 떠들며
- 강도의 비위를 거스르지 아니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 발전으로 본다 하면, 문화 발전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3. 외교론 비판
- 갑신 이래 유신당, 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외국의 원조 유무에서 판결
- 갑오 갑진 양 전쟁
- 청원서나 여러 나라 공관에 던지며 탄원서나 일본 정부에 보내어 국세의 외롭고 약함을 슬피 호소
- 국가 존망, 민족 사활의 대 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 하얼빈의 총
- 최근 3·1 운동에 일반 의사의 '평화 화의 국제 연맹'에 대한 과신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 민중의 용기있게 분발하여 전진하는 의기를 쳐 없애는 매개가 될 뿐
4. 준비론 비판 (실력양성론)
- 교육도 진흥, 상공업도 발전,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됨
- 강도 일본이 정치, 경제 양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게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
- 입고 먹을 방법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
- 교육을 확장,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
-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의 일에 비교되게라도 할 수 있느냐?
- 민중이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
- 조선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
-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
-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
- 돈 없는 군대 없는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국의 도적도 구축
- 우리 혁명의 첫 걸음은 민중 각오의 요구
- 양병 십만이 한 번 던진 폭탄만 못함
- 억천 장 신문, 잡지가 한 차례 폭동만 못할지니라
- 갑신정변의 특수 세력이 특수 세력과 싸우던 궁중의 한때 활극이 될 뿐
- 의병들은 충군애국의 대의로 분격하여 일어난 독서 계급의 사상
- 안중근, 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하였지만 그 뒷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1 운동의 만세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언뜻 보였지만 또한 폭력적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음
-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
-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
-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
- 방법: 민중의 봉기(= 민중의 직접 혁명)
3) 방법
- 폭력 투쟁
3. 대한민국 임시정부 위기 극복 노력
1. 국민대표회의
개최
- 최초의 임시정부를 조직할 당시 소수 사람들의 독단적 행동
- 서북간도는 간도참변 이후 탄식과 원망의 소리를 내고 있음
- 독립 운동의 새로운 국면을 타개
- 2천만 동포의 동성상응을 구함
-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완전하고 확실한 방침을 세워 우리들의 독립 운동이 통일되어 조직적으로 진행하고자 함
이승만의 반박: 대통령 선포문
- 대표적 외교 기구인 구미위원부를 유지
- 외교 선전 사업을 진행하면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라
1) 배경
- 개최 주장: 박은식, 박용만, 신채호
- 동참: 안창호
2) 내용
전개 과정
- 시국 통일을 위하여 현 임시정부의 제도 헌법 등을 각지의 민심과 실제 운동에 적합하도록 개혁하자는 안건 제출
조선 총독부 경무국의 보고서
- 안창호
- 현 임시정부는 이를 존속하되 다만 내각 인원의 개조로 끝나고,
- 각 파 및 각 단체를 통일하는 데 목적
- 윤해, 원세훈
- 이승만을 배척하고,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러시아령에 건설하는 것
- 주제: 독립 운동 노선에 대한 갈등 해소
- 새로운 통일적 최고 기관의 구성
(1) 개조파
- 정부를 개조하자는 것
- 김동삼, 안창호, 여운형, 홍진 일파의 주장
- 그 배후 세력이 미주의 대한인 국민회와 만주의 군사 운동자들
- 안창호 (유지하되 개혁)
- 임시정부 법통: 인정
(2) 창조파
- 윤해씨를 중심으로 한 연해주 대표와 북간도 대표의 일부는 정부를 새로 건설하자는 주장
- 정부를 개혁하자는 것
- 이동휘, 문창범, 윤해 일파의 주장
- 그 배후 세력이 러시아령의 군사 운동자들
- 신채호, 박용만 (새로운 정부 수립)
- 임시정부 법통에 대한 입장: 부정
(3) 현상 유지파
- 정부를 현상태로 유지하자는 것
- 김구, 이시영, 손정도, 송병조 일파의 주장
- 그 배후 세력이 미주의 교민단과 동지회
- 김구, 이동녕
- 현상 유지
3) 분열
- 대부분 임시정부 이탈
- 일개 단체로 전락
2. 헌법 개정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법
- 원년(1919) 4월 11일에 발표한 10개조 임시 헌법을 기본으로 삼아 임시 헌법을 만들어서
-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 임시 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통치함
1) 배경
- 이승만 탄핵 → 박은식
2) 내용
(1) 2차 개헌: 국무령 중심 내각 책임제
- 국무령은 국무회의를 대표
- 결정을 집행 또는 집행케 하고 임시 의정원에 대하여 책임을 부여함
(2) 3차 개헌: 국무위원 중심 집단 지도 체제
* 폭력 투쟁
1) 1920년대
(1) 의열단
- 박재혁: 부산 경찰서 폭탄 투척
- 김익상: 조선 총독부 폭탄 투척
- 김상옥: 종로 경찰서 폭탄 투척
- 나석주: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 주식회사 폭탄 투척
(2) 기타 의거
- 강우규: 노인동맹단
2) 1930년대 ~ 1940년대
- 대한 애국청년당: 부민관 폭파 사건
3. 한인 애국단 (김구)
1) 결성 배경
- 왜놈이 중국과 한국 두 민족의 감정을 악화시키기 위해 이른바 만보산 사건을 날조
- 심히 악화된 중국인의 악감을 풀기로
- 임시정부의 침체 극복 + 만주사변 이후
- 만보산 사건
2) 활동
(1) 이봉창 의거
- 한국인이 일본 황제를 저격하였으나 명중치 않음
- 불행히도
- 일본 해군 육전대가 상하이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 19로군을 공격함으로써 상하이 사변이 일어남
- 상하이는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감
- 일본 도쿄, 일왕 폭탄 투척
→ 이봉창 의거에 대한 중국 신문 보도를 빌미로 일본이 상하이 침략 (= 상하이 사변)
(2) 윤봉길 의거
- 일본은 시라카와 대장을 사령관으로 삼아 중국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
- 천장절 겸 전승 축하 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함
국민당의 임시정부 지원
- 한인에 대한 중국인의 감정은 놀랄 만큼 호전됨
- 장소는 낙양 분교로 하고 학교 발전에 따라 자금을 지원한다는 약속 하에 1기에 군관 100명씩을 양성하기로 결의
임시정부의 이동
- 나의 부하가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것에 대해서는 일본의 체포 및 인도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
- 불행히도
- 폭탄 투척
→ 중국 국민당(장제스)의 임시정부 지원
: 중국 군관 학교에 한국인 특별반 설치 → 한국광복군 기반 마련
→ 일제 탄압을 피해 임시정부는 이동 시작
cf) 기타 활동
- 한국국민당
- 5당 통일로 성립되었던 민족혁명당이 분열
- 한국 국민당, 조선 혁명당, 한국 독립당 및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모든 애국 단체들이 연결
* 의열단의 변화
- 민중을 각오시키는 것은 오직 탁월한 지도 이론
- 교육과 선전
- 그 밖의 다른 길은 없었음
- 오히려 민중의 조직화와 체계적인 의식화가 급선무
- 전 민중이 각오하여야 하고 단결하여야 하고 조직되어야 함
- 광저우에 가서 황포군관학교
1) 의열단의 노선 변화
- 황포군관학교 입학
- 조선 혁명간부학교 설립
2) 민족혁명당
- 김원봉
- 김구 세력 제외 총망라
- 지청천, 조소앙 이탈 → 조선 민족혁명당으로 개칭
- 좌파 단체들과 연합하여 조선민족전선연맹 결성
3) 조선의용대
결성
- 신한 독립당, 조선 혁명당, 의열단 등 5개 단체가 합쳐져서 동맹을 조직
- 항일 군대 편성의 과정을 거쳐서
- 일본은 중화민국 침략 전쟁을 개시, 중국 제일의 항일 중심지인 무한을 공격
-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의 기치 하
- 최고 지도자인 장위원장 아래 참집하여 이 부대를 조직
: 중국 관내 최초의 조선인 무장 부대
(1) 활동
- 중국군민당과 연합 (한커우)
- 다수: 조선의용대 화북 지대
- 적은 부대가 머물던 호가장 마을을 포위
- 전투는 팔로군이 지원함으로써 끝남
- 소수: 김원봉 지휘, 조선 민족혁명당이 임시정부에 합류
분화
- 김약산(김원봉)의 지휘하
- 황포 및 기타 중국 군관학교에서 훈련받은 적이 있는 청년 군인
- 일부는 우한(한커우) 전투 후 북상하여 옌안과 화북으로
- 중국 군사 위원회 정치부에 직속되어 대적 선전 화동을 전개하던 저들은 화북 지방으로 이동
* 대일 선전 성명서
-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여 한 개의 전투 단위로서 추축국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
- 왜구를 한국과 중국 및 태평양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하여 최후의 승리를 거둘 때까지 피로써 싸움
4.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정비
1. 태평양전쟁 발발 이전
1) 한국독립당
-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3당은 각기 해소되었음을 선언
-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신민주국을 건설
- 주도: 김구, 조소앙, 지청천 / 민족주의 계열의 3개 정당
- 정강: 조소앙의 삼균주의
삼균주의
- 보통 선거 제도를 실시
- 정권을 균히 하고, 국유 제도를 채용하여 이권을 균히 하고, 공비 교육으로써 학권을 균히 하며
- 대생산 기관을 국유로
- 정치와 경제와 교육의 민주적 실시로 실제상 균형을 도모
-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 기관의 국유화가 완성
- 전국 학령 아동의 전수가 고급 교육의 무상 교육이 완성
- 보통 선거 제도가 구속 없이 완전히 실시
2) 한국광복군
배경
- 시국이 점점 절박하여 중일의 전운
징병 모집
- 시안에 있는 제2지대로 찾아가서 OSS 특별 훈련을 받음
강령
- 중국 항일군과 연합
- 정치, 경제, 교육을 평등으로 한 신민주 국가 건설
한, 중 양방 상정 판법
-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소속
- 조국의 광복을 목적으로 함
- 주도: 지청천
3) 4차 개헌
배경
- 주석은 일반 국무를 처리함에는 총리 자격
- 그 외에 정부를 대표
- 국군을 총감하는 권리를 설정
- 이 방면으로는 국가 원수의 자격을 가지게 됨
- 이 비상 시국을 대처
- 우리 군대의 총사령부가 설립되어 전방에서 군령을 행하게 되는 이때에, 통수권의 합리화가 무엇보다 급함
- 주석 중심제
→ 김구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
4) 대한민국 건국강령
- 삼균주의
- 개인, 민족, 국가의 균등 실현 +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 실현
2.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1) 전쟁 준비
(1) 과정
- 한국광복군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
선언서
-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
(2) 한계
- 한국광복군 행동준승 9개항
행동 준승: 독자적 작전권에 대한 제약
- 우리 중국의 항일 작전 기간에 본회(중국 군사 위원회)에 직할 예속하여 참모총장이 장악, 운영
- 중국이 계속 항전하는 기간과 임시정부가 한국 국경으로 추진하기 이전에는 중국 최고 통수부의 유일한 군령을 접수할 뿐
- 기타의 군령 등은 접수하지 못할 것
2) 연합 작전
(1) 영국
- 미얀마, 인도 전선
(2) 미국
- 국내 진공 작전
- 한국 광복군에서 60명의 요원을 선발
- 미국의 지원 아래 3개월 동안 정보 수집, 보고, 통신 훈련을 실시
- 독립 투쟁 수십 년에 조국을 탈환하는 결정적 시기가 온 것
- 국내로 침투하여 모든 공작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자신을 얻음
- 우리들의 국내 잠입 준비는 완료됨
- 출발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게 됨
- 과정: 미국 전략 정보국
- 결과: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항복하여 시행X
국내 진공 작전 좌절
- 아! 왜적의 항복! 이것은 내게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
- 천신만고 끝에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할 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
- 걱정이 되는 것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장래 국제간에 발언권이 박약
* 중국 관내 독립운동 단체에 대한 통합 노력
중국 관내의 통일 전선 형성 노력
-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이곳 옌안에 있는 조선독립동맹의 통일 전선
1) 조선 민족혁명당
- 김원봉, 김규식의 임시정부 합류 → 야당 형성
- 5차 개헌: 주석, 부주석제 (부주석: 김규식)
- 군사: 조선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 합류
ex)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김원봉
* 태평양 전쟁 이후 다른 지역의 독립 준비
1) 중국 화북
(1) 조선독립동맹
- 조선 민주 공화국을 수립
- 전 국민의 보통 선거에 의한 민주 정권 수립
- 대기업을 국영으로 귀속하고 토지 분배를 실행
- 국민 의무 교육 제도를 실시, 이에 필요한 경비는 국가가 부담
-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 위원장 김두봉
- 건국 강령
→ 신민당 결성, 연안파
(2) 조선의용군
- (김)무정이 결성
-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과 연합
2) 국내: 조선건국동맹
- 여운형 주도
- 연합 전선 시도
- 발전: 해방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3) 미주
- 재미 한족연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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