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
근대 태동기의 정치 | 근대 태동기의 경제 | 근대 태동기의 사회 |
근대 태동기의 문화 | 탑과 불상 | 금석문 |
유네스코 지정 문화 유산 |
1. 조선 후기 산업의 변화
1. 농업의 변화
1) 이앙법 (= 모내기법)
- 논농사
- 계기: 수리시설 보급
- 김매기(제초)의 노력을 더는 것이 첫째요
- 두 땅의 힘으로 하나의 모를 서로 기르는 것이 둘째
- 싱싱하고 튼튼한 것을 고를 수 있는 것이 셋째
- 큰 가뭄을 만나면 모든 노력이 헛되어 버리니 위험
* 견종법
- 밭농사
- 대전(골이 있는 밭: 견종)은 고랑에 씨를 뿌림
2) 1년 2작 (= 이모작)
- 쌀, 보리 돌려짓기 (보리: 소작료X)
- 보리 재배 활성화
3) 광작 (= 대규모 경영)
- 지주: 토지 소유 집중화
- 소수의 부농, 대다수의 빈농
- 1~2 석락(20~40두락)을 지을 수 있으니
- 가난하고 힘없는 무리가 매양 토지를 얻기가 어려워 근심
- 노비나 고공이 많은 사람들은 경작을 끝없이 하며 토지가 없는 자는 조금도 경작할 수가 없음
- 이앙법이 실시된 후에는 농사를 많이 지으려고 하기 때문에 토지가 없는 자는 병작조차 얻을 수 없어 그 폐가 큼
계층 분화
- 부농층은 땅이 넓어서 빈민을 농업 노동에 고용
-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서도 향락을 누릴 수 있음
- 빈농층 중의 어떤 농민은 지주의 농지를 빌려 경작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음
- 그들 가운데 어떤 자는 농지를 얻을 수 없으므로 임노동자가 되어 타인에게 고용됨으로써 생계를 유지
4) 지대의 변화
(1) 예전: 타조법
- 1/2, 정률제, 자유 영농X
(2) 도조법
→ 항조운동 계기 (소작쟁의)
- 1/3, 정액제, 자유 영농O
- 도지권
- 전호의 영구 경작권 확보
- 지대의 금납화
- 지주와 전호의 관계: 신분 → 경제
도조법
- 비록 큰 풍년이 든 해라 할지라도 한 합이라도 더하는 경우가 없으며
- 또 크게 흉년이 든 해에도 한 합이라도 줄여 내는 경우가 없으니
5) 상품 작물 재배
- 쌀 상품화 (밭 → 논)
cf) 새 작물의 전래
- 고구마: 18c, 일본
- 감자: 19c, 청
- 밭은 논농사가 가장 잘 되었을 때 수입과 비교하더라도 이익이 열 배나 됨
6) 농서
- <농가집성>: 신속, 이앙법
- <색경>: 박세당
- <해동농서>: 서호수
- <과농소초>: 박지원, 영농 방법 혁신 강조
- <임원경제지>: 서유구, 농업 백과사전
2. 상업의 변화
1) 사상
- 만상(의주), 유상(평양): 청
- 송상(개성): 송방 설치
- 내상(동래): 일본
- 경강상인: 한강 유역
사상의 발달
- 송파
- 삼남과 북도 영동의 상인들을 모두 이곳에 모이도록 유인
- 각종 물종을 쌓아 놓고 날마다 매매
2) 전국적 유통망 형성
→ 인근 장시와 연계하여 지역 시장권 형성
무역의 발달
- 선조 26년(1592) 나라의 기근에 재상 유성룡의 건의로 요동에 공문을 보내어 압록 중강에 시를 열어 교역하게 됨
- 부상대고들은 물화를 거래하는데 남쪽으로는 왜국과 통하고 북쪽으로는 연경과 통함
- 송도의 상인들이 강계에서 인삼을 모아 기회를 보아 동래로 직접 달려가서 무역으로 떼돈을 범
포구의 발달
- 배가 통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음
- 모두 바닷물이 통하므로 장삿배가 모임
- 배가 닿는 곳마다
- 거간꾼이 되어
3) 선상 상인
- 선박 이용, 물품 구매 처분
ex) 경강 상인
4) 객주, 여각 상인
- 상품 매매 중개 및 보관, 금융
5) 화폐 (상평통보)
- 인조(주조) → 효종(널리 유통)
- 전황 발생
- 심지어 채소를 파는 늙은이나 소금을 파는 아이들까지도 모두 곡식을 버리고 돈을 찾음
- 동전을 주조하여도 돌지 않고
- 돈을 감추고 그것이 귀해지기를 기다려 폭리를 바라기 때문
- 요즘 곡물 값이 싼 것은 대풍년 때문이 아니라 민간에 돈이 귀해서 나타난 것
- 신용 화폐: 환, 어음 등장
(1) 화폐 사용 논쟁
- 찬성: 박지원
- 반대: 이익
- 숙종 4년 1월 을미
- 대신과 비변사의 여러 신하들을 접견하고 비로소 돈을 사용하는 일을 정함
3. 공업의 변화
1) 민영 수공업 (= 납포장)
→ 선대제 수공업
2) 사채의 허용 → 잠채의 성행
- 광산
- 은광
- 덕대(전문 경영인)
사채 허용
- 대부분은 사방에서 이득을 좇아 몰려온 무리
- 조정에서 은이 나는 곳에 은점 설치를 허가만 해주면 돈 많은 장사꾼은 재물을 내어 일꾼을 모집
- 땅이 없어 농사짓지 못하는 백성들
- 은을 캐어 호조와 각 영, 고을에 세를 바치고, 남는 대로 물주에게 돌릴 것
2. 서민 경제의 발전
1. 농민 경제의 변화
1) 모내기 확대
- 수리 시설 확충
- 제언사 설치(현종): 저수지 관리
- 정부의 태도: 초기(금지) → 후기(금지)
2) 농서 편찬
(1) <해동농서>
- 서호수, 정조
(2) <과농소초>
- 박지원, 정조
2. 민간 수공업 발달
- 관영 수공업도 민간 수공업자를 고용하여 생산
관영 수공업의 변화
- 지방 관청들에서는 일이 있으면 품삯을 주고 사공을 고용
- 지금은 외공장에 등록하여 장적을 본도에 보관해 두는 법이 없어짐
- 지방 관청들은 일이 있으면 품삯을 주고 사공을 고용
민영 수공업 발달
- 군역을 도피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점촌으로 밀려들고 있어
- 베 값이라 미리 받은 돈
3. 민영 광산의 증가
- 연은분리법 개발 (회취법, 연산군)
3.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
1. 사상의 활약
1) 시전
- 훈련도감 군인의 생계를 위한 상업 활동
시전의 폐해
- 물가가 3배 내지 5배가 올랐을 뿐만 아니라
- 서울에서 놀고먹는 무리들 가운데 평시서에 출원하여 시전을 새로 낸 자가 매우 많아짐
- 서울의 영세민들은 금난전권의 피해를 입어 장차 거래가 끊어질 형편
(1) 신해통공(정조)
- 20~30년 이내에 설치된 작은 시전을 조사해 모조리 혁파
- 형조와 한성부에 명하여 육의전 이외에는 난전을 금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 통공 발매의 효과
- 작년 한양의 면포 가격이 이 때문에 등귀하지 않아 서울 사람들이 생업을 즐길 수 있게 됨
- 육의전 제외한 시전의 금난전권* 폐지
- 노론의 기반 약화
* 금난전권
- 한양 도성 안과 도성 밖 10리 내에서 난전의 활동 규제
cf) 김만덕
- 정조
- 제주 빈민 구휼
2) 사상
- 경강상인: 19c 도고 행위
도고의 성장
- 이현과 칠패
- 동서 어물이 서울로 들어오는 것을 모두 사들여 쌓아 두었다가 이현과 칠패에 보내서 난매함
- 안성
- 과일이란 과일은 모두 거두어 삼
- 허생은 저장해 두었던 과일들을 10배 이상으로 팔았음
도고의 폐해
- 생선 파는 시전을 강가에 설치하여 여러 곳 상인들의 물건을 모조리 차지함
- 양주, 포천 등 중간에서 기다리다가 북어상들에게 (북어를) 사서 마음대로 팔고 있음
2. 화폐의 유통
1) 은 유통
- 임진왜란 당시 명군이 참전
- 후금(청)
3. 중계 무역의 발달
1) 일본
- 수입: 은
4. 수취 제도
1. 영정법
- 전세
(1) 양전 사업 (=토지 조사 사업)
- 은결(양안에서 빠진 토지) 색출
(2) 결과
- 양반 지주: 부담 경감
- 전호 농민: 실질적 혜택X
(3) 한계
- 각종 부가세로 농민 부담이 오히려 증가
cf) 양척동일법 (효종)
- 자를 통일하여 측량
배경 (연분 9등법의 한계)
- 등분을 정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음
- 수령은 많이 거두어들이는 데에 힘쓰므로 흉년이 들어도 흉년이 아니라고 하고 곡식이 조금만 잘 되어도 아주 잘 되었다고 하여 등급을 높임
내용
- 양전 뒤에 마침내 연분 9등법을 파함
- 나머지 5도는 모두 하지하로 정하여 세금을 징수
2. 대동법
- 공납
- 토산물 대신 쌀, 삼베, 무명, 동전으로 납부
(1) 세율
- 12두/1결
(2) 과정
- 광해군(이원익): 경기도
- 효종(김육): 충청도, 전라도
- 숙종(허적): 전국
(3) 한계
- 별공, 진상이 여전히 존재
(4) 영향
- 공인 등장 → 화폐 사용 증가
- 민영 수공업 발달
- 상품 화폐 경제 발전 → 포구 성장
- 사선 주도 ex) 경강상인
반대
- 땅이 많은 사람들은 한꺼번에 내기 어려움
찬성
- 무릇 부자는 수확이 많고 노동력이 많은데 가난한 사람들도 여태껏 그럭저럭 납부해 온 것을 왜 못 내겠음
- 방납인은 자신의 이익만 돌본 지 오래되었음
실시
- 선혜청 설치
- 방납인에 막혀 물건값이 3~4배에서 수십~수백 배가 되어 폐해가 큼
- 담당 관청은 때에 따라 물가와 시세를 보아 쌀을 방납인에게 지급, 수시로 물건을 조달하도록
- 각 도의 공물은 이제 미포로 상납
- 공인
- 본래 정해진 공물 그대로 상납하는 이
반응
- 대동의 법은 호세가는 불편하다 하고, 가난한 백성들은 편하다
- 토호들만 싫어할 뿐 백성들은 대동법을 보고 기뻐함
- 토호와 방납인들은 얻었던 이익을 모두 잃게 됨
- 백성들이 이 제도가 편리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계속 실시하기로
확대 실시
- 백성들이 매우 편리하게 여김
- 광해군 때 각 관청의 하급 관리들과 모리배들이 갖가지 훼방해서 편리함을 알고도 시행하지 못함이 오래됨
- 일시에 못하더라도 2, 3도에라도 먼저 시행
- 그 법의 기원은 율곡 이이에게서 시작
- 선혜청
* 요역
폐단
- 백성을 요역하는 법도에는 8결에 1인의 역군을 내게 하고 1년 동안에 백성을 요역하는 것이 6일에 지나지 않게 하였지만
- 가난한 백성은 토지 1결을 가지고 권세가의 7결의 요역까지 합쳐서 떠맡다 보니 농사철에 농사를 못 짓게 되어 가을에는 수확할 수 없음
* 군역
폐단
- 감영군은 서로 들어오려고 하고, 병영군은 모두 달아나려고 함
- 한 집안에 부, 자, 조, 손이 군적에 한꺼번에 기록되어 있거나
- 3, 4명의 형제가 한꺼번에 군포를 납부해야 함
- 이웃이 견책을 당하고 친척의 친척이 징수를 당하고
- 황구는 젖 밑에서 군정으로 편성되고
- 백골은 지하에서 징수를 당하며
정약용의 애절양
- 시아버지 죽어서 벌써 상복을 벗었으며
갓난아기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이 집 3대 이름이 모두 두 군적에 올랐네
호포법
1. 주장
- 호역으로써 군역을 대신
- 호수에 따라 귀천과 존비를 물론하고 일체의 부역을 균평하게 한다면
2. 실시
- 인정에 대한 세
- 예전에 면제되던 자라도 신포를 바치지 않을 수 없게 됨
- 국가에서 충신과 공신을 포상, 장려
- 그 후손이 면세를 받기 때문에 일반 평민이 법에 정한 세금보다 무거운 부담
3. 효과
- 황구의 원성이 없으니
4. 반발
- 지금 일반 백성과 마찬가지로 군적에 올리고 똑같이 취급한다면 백성들은 이때가 기회를 틈탈 시기라고 생각할 것
- 호포법을 실시한 것은 대개 균일하게 하고자 한 것
- 백성들은 동등하다
3. 균역법
- 영조
균역법 전 호포론에 대한 입장
- 평생 힘들여 독서한 선비가 상놈들과 똑같이 취급당하여 포를 바쳐야 하니 억울하지 않겠음
- 호가 있으면 역이 있는 것은 상례
균역법
1. 실시
- 양역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명함
- 1필로 줄이도록 대책을 강구하라
2. 내용
- 어세, 염세, 선세, 선무군관에게 받는 것, 결작
3. 한계
- 경비를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아 충당하느라 오히려 그 폐단이 심함
(1) 배경
- 5군영 → 군영 경비를 위한 수포군 증가
- 독자적 군포 징수
(2) 양역이정청 설치(숙종)
(3) 세율
- 1년에 군포 1필
(4) 부족한 재정 해결
- 결작: 군역이 일부 전세화
- 선무군관포: 일부 상류층에 군포 1필 부과
- 잡세 직접 징수
ex) 어장세, 선박세, 염전세
(5) 결과
- 균역청 설치 → 선혜청에 통합
* 조선 후기 수취의 특징과 한계
1) 금납화
2) 정부 의도
- 지주의 부담 증가 → 국가 재정 안정
- 전호의 생활 안정
3) 한계
- 일시적 안정
- 지주: 대동세, 결작 부담을 전호에게 전가
4) 결과
- 총액제 부과
ex) 전세(비총제)
- 3정 문란 발생
* 도결
- 서리가 관청의 공전, 군포를 사적으로 사용
- 이를 보충하기 위해 징세를 할 때 전결세율을 정액 이상으로 기입하여 화폐로 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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